"육아의 가장 큰 적은 불안이에요. 아이랑 너무 밀착돼 있으면 불안해지기 마련이에요. 내 아이가 뭘 어떻게 하는지 빤히 보이니까. 일단 엄마가 바빠지는 게 좋아요. 아이랑 좀 떨어져 지내면 일희일비를 덜 하게 돼요. 또 멀리 보면 돼요. 장기적으로 보면 숫자든 한글이든 다 하게 되거든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예뻐하면서, 할머니처럼 그렇게."
보통 할머니들의 손주사랑은 자식 때와는 또 다르다고 한다. 잘 길러야 한다는 중압감과 한 생명을 좌우한다는 책임감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부담에서 벗어나니 그저 예쁠 수밖에 없다. 탯줄로 얽힌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면 된다. 그러니 자식에 내 삶을 투영할 필요도, 자식이 내 삶의 트로피가 될 일도 없다. '할머니가 돼라'는 결국 한 발짝 떨어지기, 거리 두기다.
건강한 거리 두기는 주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부동산 투자하는 친구들만 있으면 나도 해야 할 거처럼 불안해지지 않냐"는 것이다. "욕심도 잘 옮겨붙기 때문에 주변에 누가 있느냐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염치가 전염되듯, 욕심도 전염된다. 쉬이 흔들리는 것이 인간임을 자각하고 일단, 불필요한 욕심에 흔들리지 않도록 욕심을 전염시키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거리 두기'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란다. 그렇다고 폐쇄적으로 되라는 조언은 아니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 열린 마음이 필요해요. 저는 책이 도움이 됐지만 바빠서 책을 못 읽는 사람들, 가령 가게 사장님은 찾아오는 손님의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죠. 어디서든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열면 좋은 자극을 주는 '삶의 지혜자'를 만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부끄러움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던 것이 큰 도움이었던 것 같아요. 세상이 나아지는 법, 인간다움을 질문하는 법 같은 좋은 책을 골라 읽고,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거나 좋은 글을 쓰려고 고민하는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요. 자기 세계를 그렇게 부끄러움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로 구축해 놓으면 나도 그렇게 비슷하게 따라살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항상 부끄러움, 올바름을 생각하고 사는 게 피곤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나를 상처주는 사람이나 관계를 멀리할 수 있고, 나도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니까요." 은유작가
'그래서 부끄러움을 알면 행복해지나요?' 물었다.
"나를, 남을 적어도 불행하게 하지 않을 수는 있지 않을까요." 은유작가
코로나예방이 사회적 거리두기라면
양육불안예방은 아이와 정서적 거리를 두기
귀가 얇다.
다른 사람이야기에 쉽게 동요된다.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크게 요동친다.
나는 그렇다.
<알지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저자 은유와의 인터뷰를 읽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부쩍 아이의 공부에 신경쓰는 내 하루를 돌아 봤다.
유치원까지는 아이에게 공부를 하나도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난 후 아이 친구들 엄마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공부얘기 뿐이다.
아이들의 삶의 이력도 다양해서 영유에 나온아이는 이미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영어사용에 거리낌이 없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나면, 아이를 편안하게 키워야지 하는 내 대외적이미지와 달리 집에서 공부하라며 아이를 닦달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보기엔 작은 분량의 공부이지만 그걸 아이에게 시키는게 쉽지는 않다.
아이는 쉽게 피곤해하고, 쉽게 배고파한다.
그런 시간들을 달래면 한두시간이 훌쩍지나간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해야할 일들을 끝내려면 또 재촉해야하고 끝내 화를 내게 되기도 한다.
아이와 거리를 둬라?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나는 아이가 없는 시간에 최대한 책을 읽고 내 활동을 한다.
그러나 아이가 오면 내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기도 하여 아이 공부를 봐주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의 밥을 챙겨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사실 그것들만 하기에도 바쁜 날들도 있다.
아이하고 둘먹는 밥상차리는데 이렇게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사실인지 놀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이와 보내는 절대시간이 절대적으로 많기에 아이의 모습이 눈에 모두 들어온다.
아이와 정서적 거리를 두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불안을 가장 증폭시키는 것은 주변 엄마들과의 대화이다.
무슨 학원을 다닌다. 초등 5학년때 석차가 평생간다. 아이를 공부하게 하려면 아이를 가만두면 안되다. 아이는 절대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다. 등등 엄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내가 공부시키지 않아서 아이가 후회하게 될 날들이 온다면 나는 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해질까?
그런 불안이 몰려오면 아이를 채근한다.
아직 아이에게 공부학원을 보내지 않는 내 선택에 확신이 없어지는 순간 괴롭다.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들을 정리하면
보통의 전업주부가 아이에게 정성을 쏟고 아이의 성적으로 보상받으려는 전형적인 모습과 같다.
내 엄마가 오로지 자기의 시간을 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사용한다면 내 부담감이 어땠을까?
내 주도적인 공부가 가능했을까?
그 압박감이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컸으리라 예상된다.
내가 시험을 준비할 때 엄마에게는 늘 내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엄마에게는 시험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기 싫었다.
엄마는 누구보다 내가 시험을 붙었으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답답했다.
아이도 그러진 않을까?
문제를 푸는 아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아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 그렇게 나를 쳐다봐!"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내가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주고 있는 것일까?
엄마, 아빠는 바쁜 게 맞다.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의 공동체이지만 각자 존재를 개인으로서 인정해 줘야 한다.
오늘 이 생각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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