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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요./에세이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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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312.

내가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은 날이다.

신분 확인의 순간마다 나의 과거를 강제 소환하게 했던 나의 첫 주민등록증은 그날 이후로 지갑에서 서랍으로 이사를 했다. 그 이후로 운전면허증은 도로 위가 아닌 관공서나, 은행 등에서 이따금 얼굴을 내비치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다. 나의 과거를 지켜주며.

 

사실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 동안 운전면허증을 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장 차를 끌고 다녀야 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내 차를 살 형편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마음은 정권교체와 함께 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운전면허 간소화 정책을 시행하며 기능시험 항목을 대거 축소했다. 기능 시험에서 T, S, 평행주차 항목이 빠졌고, 교육시간은 50시간에서 11시간으로 대폭 줄었다. 나는 지금도 평행주차를 제외하고는 그것들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나는 전진과 후진 정도의 기능을 익히고, 도로 주행 한 번으로 바로 시험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춰진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된 나의 뚜벅이 생활은 남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나 자신은 불편하지 않았다. 이동 시간이 더 많이 들긴 했지만 그 시간들을 내 방식으로 채워 쓰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뚜벅이 생활이 내 아이를 힘들게 하고 내 아이의 생활 반경을 작게 하면서 점점 내 마음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와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도서관에 간다.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오르막 내리막이 다소 심한 경로이지만 아이는 나보다 능숙하게 그 길을 다닌다. 아이와 함께 여천 길을 달리면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괴로움으로 변해버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나름 아이를 무장을 시키고 자전거를 태웠는데 그날 밤 아이 몸에서 열이 올랐다. 아이는 주말 내내 고생하다 코로나 검사까지 하고 학교마저 하루 쉬어야 했다. 남편 역시 출근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이는 음성이 나왔지만, 나의 속상함은 가시지 않았다. 운전할 수 있는 자격만 갖춘 엄마는 서럽고 미안했다.

 

그날부터 남편과 도로연수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근처 산업단지에 가서 2~3시간을 달렸다. 주말에는 차가 거의 없는 곳이라 그런지 운전연습을 하러 온 차량들이 꽤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며 강한 동지애를 느꼈지만 동시에 서로의 존재에 긴장했다. 도로 한쪽에서는 주차 연습을 하는 부부의 고성이 들렸다. 고성이 난무한대도 나는 주차 연습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최대속도 30km로 벌벌 떨며 몇 주를 달렸으니 남편이 답답함이 고구마 몇 개였을지는 가늠이 되기도 한다. 남편은 점점 보조석만 앉으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약간의 신경질을 장착하고, 예민함을 극도로 끌어올린 후, 목청을 풀고서야 비로소 안전벨트를 맸다.

그 이후로도 인간(남편) 내비의 철저한 통제 아래 비주체적인 운전이 3~4달을 이어 갔다. 수원 시내, 안양, 김포, 서울까지 달렸지만 나는 남편 내비 없이는 혼자서 운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번은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 앞차를 거의 칠 뻔한 순간이 있었는데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린 다음 팔을 올려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위험천만한 와중에 웃겼다. 그날 남편은 앞차가 성능 좋은 차였으면 바로 박았어. 브레이크 밟아도 조금 앞으로 가는 차라 다행이었지.” 난 성능이 보통인 차주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혼자서 운전하기는 글렀다고 선을 그은 것 같다.

 

며칠 뒤 부부모임에서 우리 차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됐다. 차를 새로 구입하면서 기존 차로 내가 운전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남편 친구는 그 사실을 몰랐나 보다. 남편 친구가 기존 차를 처분했냐고 묻자, 남편은 아직 처분 전이며, 차에 기름도 가득 들었는데, 하도 안 타서 기름이 다 산화되게 생겼다며 차 걱정을 살뜰히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마음이 부글댔다. 친구는 나의 사정을 모를 테지만, 사람들 앞에서 철저히 돌려 깎인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설움이 터졌다. 저차가 무슨 대수라고 그렇게 걱정을 하냐며. 내가 다음 주 내로 그 기름 다 쓰겠다며 소리쳤다. 뒤돌아 후회를 했지만 돌려 깎인 내 기분은 여전히 앙상했다.

 

다음 주 주말, 남편과 근처 도서관을 3번 왕복해서 다녀오고, 그날 처음으로 나 홀로 운전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주행시간 10, 주차시간 15분이 걸렸다.

 

나는 못 할 것이라고 그어놓은 나의 선을 넘었다.

그것이 나의 도약이다. 비록 지금은 단 한 경로의 운전만이 가능하지만 말이다.